스토리북
애이불비
그분을 모셔온 지 벌써 보름이라. 회복이 빠른 것은 다행이지만 표정이 내내 어두워 안쓰럽기 이를 데 없네. 이따금 검을 쓰다듬는 모습에 늘 노심초사하는 어리석은 계집이 여기있네.
가까이 뵈니 기쁘고 수줍어 얼굴을 들기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고 우울하여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네. 잔 실수도 잦아졌으나 스승님은 별말씀이 없으시네. 나도 아닌 척하네.
아무 말 없이 먼 하늘을 볼 때마다 무너지는 것은 내 가슴이니, 창 밖 지저귀는 원앙 한 쌍이 얄밉기만 하네.
입맛이 없다 하여 죽을 쑤어 드렸더니 억지로 수저를 들었다가 놓으며 누군가를 잊은 듯한데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하다 하시네. 떨리는 눈썹을 숨기지 못했더니 알고 있으면 대답해 달라시네. 평소에는 제대로 대답도 않더니 야속하기만 하네.
하는 수 없이 죽은 자라 대답하니 이름이라도 알려달라 하시네. 모른 척 돌아섰으나 어찌 잊었으리오, 그 부러운 여인의 이름을.
서산에 걸린 해를 동쪽 바다로 움직이면 꿈이 이루어질까. 어머니가 나를 일찍 낳았더라면 그분의 곁에 내가 설 수 있었을까.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이 어리석은 마음을.
버림 받은 것도 아닌데 설움이 복받치니 달이 나를 비웃겠네. 차라리 버림 받은 거라면 씁쓸한 추억 껴안고 잠이라도 들 것인데 잠들지 못하는 밤은 길기만 하네.
찬 방에 초를 켜니 새어온 바람이 작은 불을 흔들어대네. 바람아 멈추거라. 내 마음 이미 알고 있는데 왜 너까지 괴롭히느냐. 한심하고 불쌍하여 눈물이 그치질 않네.
날이 밝아 떠난다 하시니 박정한 스승님은 잘 가라는 말뿐이네. 다시 떨어진 물음 답할 이는 나뿐이니 곤궁한 내 모습 무어라 생각하실까.
망설이고 주저하니 나를 바라보는 눈빛 그저 궁금해하는데, 돌 같은 마음에 이 어린 계집은 그저 들풀이었구나.
하는 수 없이 이름을 일러드리니 드디어 환해지는 목소리에 폐부가 끊기네. 그리 소중한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잃지나 말 것이지 왜 남의 복장을 뒤집는가.
고맙다며 가뿐히 떠나는 뒷모습. 그림자는 길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옮기며 그저 웃네. 웃어야지, 어쩔 것이냐. 웃어야지.